[텔레그램 ‘n번방’ 1년] ②판사에게 용서를 비는 가해자들

조나리 기자 승인 2021.04.20 14:01 | 최종 수정 2021.04.20 14:32 의견 0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 활동가들은 여전히 많은 n번방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재판부에 용서를 빌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취재룸J

조주빈과 달리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가해자들의 재판도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 활동가들의 감시 대상이다. 이들의 재판방청은 단순히 결과 보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탄원서를 모아 재판부에 제출하고 방청을 통해 사법부를 감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법원에서도 방청석을 의식해 2차 가해를 줄이기 위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고. 멸균 활동가는 “재판방청은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가장 쉬운 오프라인 연대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활동가 멸균은 “방청연대가 직접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마주보는 활동이기 때문에 가장 직접적인 오프라인 연대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방청석을 채우는 자체가 피해자와 연대하는 뜻도 있지만, 사법시스템을 감시하고 직접 압박을 함으로써 저희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한 재판에 방청객이 거의 없었는데 그날 재판에서 피해자의 피해영상을 그냥 틀었었다”면서 “그런데 같은 판사의 다른 n번방 재판에서는 방청객이 많이 오자 피해 영상 시청을 비공개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활동가들은 재판을 방청하면서 다양한 가해자들을 봐왔다고 말했다. 반성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뻔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가해자들도 있다. 특히 피해자가 아닌 재판부에 사과를 하는 가해자들도 여전히 상당하다는 게 활동가들의 전언이다.

우주 활동가는 “판사와 가해자를 포함해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감시자가 생기니까 방청객을 의식하는 게 분명하게 보인다”면서 “특히 2차 가해를 줄이려고 하는 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방청객들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으면서 경계하는 판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을 시작할 때 가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신상정보를 말하는데 방청객이 듣지 못하게 빠르게 이름을 말하는 피고인들도 있다”며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갈취해서 협박으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가해자가 자신의 신상이 유포되는 건 두려워하는걸 보면 참 화가난다”고 꼬집었다.

반면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방청객들을 적대시하는 가해자들도 있다고. 안개 활동가는 “신상공개가 안된 한 가해자는 재판장에 들어오자마자 방청석을 한번 훑어본다”면서 “그리고 자기 신상을 말할 시간에 마이크에 대고 다 들으라는 식으로 엄청 크게 말하기도 한다. 다 들으라는 식으로. 뻔뻔한 가해자들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한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도 형식으로 하는 가해자들이 대부분이고 피해자보다 법원에 죄송하다고 하는 경우가 참 많다”면서 “‘번거롭게 해드려 법원에 죄송하다’ 이런 말을 하는데 참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안개 활동가는 “피해자들한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도 형식으로 하는 가해자들이 대부분이고 피해자보다 법원에 죄송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진=취재룸J

이에 대해 우주 활동가는 “대체적으로 가해자들의 태도는 ‘잘못은 인정하는데 선처해달라’ 이거다”라며 “또는 어떤 혐의는 인정하는데 이거는 안했다. 그러니 참작해 달라. 이런 식의 답변이 많다”고 재판 분위기를 설명했다.

안개 활동가는 여러 재판 방청 중 성착취 영상을 재유포해 기소된 4명의 미성년자 재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 중 한명이 자기 여동생이 피해자라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면서 “그걸 보면서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 참 암담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일부 1심 판결이 나온 가해자들에 대한 형량에 대해서도 활동가들은 분노를 드러냈다. 실제로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과 박사방의 원조격인 n번방을 운영한 문형욱(갓갓)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가해자 중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도 상당하다고.

우주 활동가는 “조주빈이나 강훈 등 신상정보가 공개된 핵심 관련자들은 1심이 끝났는데 항소를 해서 현재 2심이 진행 중에 있다”며 “주요 공범들도 검찰에 구형받은 것에 절반도 못 미친 형량을 선고받거나 심지어 잘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들은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도 정말 많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조주빈의 형량에 대해 안개 활동가는 “기존의 성범죄 사건 선고에 비하면 높은 형량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 형량들이 말도 안 되게 낮았던 것일 뿐”이라며 “과거 솜방망이 처벌과 조주빈의 형량을 비교하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판사들도 이전에 내렸던 형량들과 비교해서 내리다 보니 그런 거 같다”며 “판사들의 성인지감수성 부족도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탄원서. /사진=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 활동가들은 모두 본업이 따로 있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수많은 재판에 나가고, SNS 활동은 물론 각종 탄원서와 청원을 모아 관계 기관에 제출하기도 한다. 직장인인 우주 활동가는 지난해 한참 사건이 터질 무렵 수액을 맞고 기자회견에 나가기도 했다. 이들에게 이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안개 활동가는 “사법부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방청을 하는 것도 있지만 제게 방청연대는 피해자들에게 저희가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치지 않고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우주 활동가 역시 “1차적으로는 사건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지만,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면서 “실제로 재판에 오면 많은 여성들이 재각각의 표정과 모습으로 하나의 사건을 위해 함께 분노하고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 거 같다”고 말하며, 방청연대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피해자들과 연대해달라는 당부도 나왔다. 멸균 활동가는 “매주 SNS에 재판 일정을 올리고 있다”면서 “재판 방청이 아니더라도 청원에 동의하거나 간단하게는 잊지 않고 SNS에 사건을 공유하고 알리는 것만으로 피해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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